Wednesday, July 28, 2010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1편 –디자인 서울의 신호탄: 청계천의 소라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1편 디자인 서울의 신호탄청계천의 소라


서울 지하철역사 여기 저기에서 '서울의 새로운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서울시정 홍보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광고판 안에는 구역별로 새로운 랜드마크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 엄청난 양의 사업을 언제 저렇게 빨리 진행했을까 경이롭다.

                             리슨투더시티 녹조투어 참가자들 가든파이브 가는 길 잠실역 2010. 07. 25

디자인 서울이라는 정책을 서울시의 주요 사업이자 서울행정의 핵심으로 다루면서 서울시내 곳곳에서 2010 디자인 수도라는 광고판과  서울이 좋아요 라는 광고판도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음악 서울' , ' 무용 서울' , '미술 서울' 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디자인 서울이었을까?
이 시점에서 왜 디자인 일까그리고 서울시가 말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디자인이 삽시간에 행정의 일부가 되면서 함부로 비판해서도 논의해서도 안되는 권력의 핵심적 사안으로 떠오르며,  이미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서울시 안에서 독자적인 의미로 변형 확장하게 된다연재될 이 글에서는 디자인 서울이라는 것이 탄생한 배경과 왜 하필이면 디자인 이었을까를 다각적 방면에서 분석 하고 과연 디자인 서울에는 디자인이 있는가 묻고자 한다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에 연재될 글의 시작이 청계천이라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왜냐하면 청계천 사업은 이명박 전 시장의 야심작이지 디자인 서울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 때문이다하지만 청계천개발이야 말로 신 개발 독재정권의 매커니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자지금 디자인 서울의 초안을 설계하게 해준 토대이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청계천을 살펴 보아야한다특히 청계천 초입에 있는 소라 모양의 조형물은 디자인 서울을 예고하는 신호탄과 같으며 행정을 이끄는 주체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것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청계천 소라결핍의 상징





                                                           
              청계천 소라의 위풍당당한 모습. 당장이라도 하늘을 두 쪽 낼 것 같다.

문화전통환경 복원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청계 복원은  5년이 지난 지금 도시민 삶에 대한 파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소시민들의 삶과 문화 철거한 위에 랜드마크를 세운사람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경제적 이익이므로 그러한 천박한 의도를  감추기 위하여 주로 문화적 역사적인 노력을   같은 느낌을 최대한 살린 상징물을 만들고 싶어했다그리고 시민들의 문화와 역사를 대체할 것을 신경질 적으로 찾아 헤매게 되었고 대부분의 경우의 대체물은 해외의 유명한 디자이너 작품이거나 유럽의 유명한  장소를 모방한 형태가   밖에 없었다서울의 랜드마크는 태생부터가 결핍의 상징인 것이다
새로운 상징물은 형상의 규목가  수록높을수록비용이 많이 들수록유명한사람에 의해 디자인 될수록 좋다
그럴 수록 대중매체에 노출하기 쉬워지며 마치 낡은것을 청산하고 미래를 제시해주는 듯한 효과를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 1가에 서 있는 길죽한 조형물 일명 소라의 본명이 스프링’(Spring)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라의 예산은 34억으로 역대 최고 조형물 가격을 갱신했다고 당시 서울문화재단 유인촌대표가 발표했다. KT 가 전액 기부하여 지어졌다고 하는데그 생김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예술적이라고 보기 힘든 공공 조각품이다특히 공공장소에 놓여지는 공공 조각 미술품 같은 경우에는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의 재산이므로 시민의 의견이나 취향장소에 대한 분석역사적 맥락의 이해는 필수적인 요소이다하지만 소라는 그 모든것이 완벽하게 부재한  조형물이다스프링(spring)은 명사로써는 ’ 혹은 용수철’ 이라는 뜻이고 동사로서는 샘솟는다’, ‘튀어오르다’ 라는 뜻으로 샘물이 솟아남이란 의미를 가진다.  스프링이라는 원래 작품의 이름을 두고 사람들이 소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스프링이라는 영어문화권에서만 이해가 가능한 다의적 제목에 익숙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스 올덴버그라는 미국의 예일 대학원을 졸업한 스웨덴 출신의 팝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조형물인데,  왜 그의 조형물이 청계천에 세워져야하는지 당위성의 부족으로 2005년 청계천 개장 당시 많은 논란거리가 되었다서울이나 한국의 예술과 거의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는 클래스 올덴버그 작품의 선정이 어떤 경위로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알 방법도 없고,  미술계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 것도 어떤 경위로 무시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더군다나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 제작이 한 대학의 교수의 공방에서 진행되었는데어떠한 절차를 거쳐 제작을 맡기게 되었는지 절차가 불투명하여 논란이 되었다.


한 때 잘나갔던 올덴버그 

클래스 올덴버그의 60년대 초기 작품은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예술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닌 상품을 파는 곳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더스토어'라는 가게를 차리고 쓰레기와 상품 중간정도 되는 오브제들로 가득 채웠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어버린 미술시장에 대한 신랄한 풍자였다.


 
1967 클래스 올덴버그 더스토어 설치장면과 . 더 스토어포스터




올덴버그의 해프닝은 곧 팝아트의 기류와 만나 쓰레기와 작품 중간에 있던 오브제들을 
미국적 음식이나 물건으로 바꾸어 크고 단단한 재질로 만들기 시작한다.

일상적 오브제의 확대라는 것은 일반대중에게 크게 인기를 얻으며 팝 아트의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특히 미술관 야외에 하나 쯤 꼭 배치해야하는 머스트 해브 작가가 되었다.




Claes Oldenburg and Coosje van Bruggen Spoonbridge and Cherry, 1985-1988
aluminum, stainless steel, paint
354 x 618 x 162 in.





  올덴버그는 초기에 미술의 자본화와 상업화를 맹렬히 비판 하였지만상업적 성공으로 자신의 오브제가 시작했던 근거를 잃고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다.  60세가 넘어도
불타는 창작열을 보이며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클래스 올덴버그는 그가 한 참 많은 조각을 팔아 치우던 70-80년대 감각에 머무르는 이미 죽은 작가가 되어버렸다.










(2005년  소라 제작 발표로 서울을 방문한 당시 77세의 클래스 올덴버그)


김 빠진 사이다 올덴버그 선생은 여러분이 예상한 바대로 청계천에 작품을 의뢰 받을 당시 한국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그는 96년 한국을 딱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그때 올덴버그의 부인이 한국에서 인상 깊었던 것이 저고리의 옷고름이여서 색상을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조형물의 색을 선정하고 리본같은 것이 물줄기처럼 위로 올라가는 모양을 그대로 모티프로 삼아 디자인 했다고 발표했다.    청계천의 시작점은 조선의 중심 거리였고, 경복궁으로 가는 세종로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고 서민들의 삶의 흔적이 하루만에 사라진 장소이다.  그 역사적 장소에 파랗고 빨간 저고리 리본이 왠 말인가. 게다가 안에는 DNA가 꼬아져 들어있는데 컨셉을 읽지 않아도 민족의 유전자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34억이라는 사회적 비용, 공공장소에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봐야하는 시각적 개방성을 고려했을때 올덴버그의 유치한 컨셉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3D 스케치

촛불집회가 한참 일 때 항간에서는 이 조각이 관상이 안좋기 때문에 촛불집회가 일어나는 원인에 일조했다든가 혹은 이 조각이 물줄기보다는 화(), 불꽃을 연상시켜 촛불집회가 일어났다는 의견이 제기 되는가 하면 뾰족한 것이 하늘 높이 솟아 불안하게 보이고 기분이 나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만큼 인기 없는 공공미술품도 드물것이다.


청계천 소라는 맹목적으로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원한 행정가들이 욕망과,  스타 작가의 무성의하고 안일한 작품 제작 태도가 빚은 씁쓸한 서울의 자화상이다.
청계천 소라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밀실행정과 공공미술에 대한 소통의 부재로 화재가 되었고 공공미술품에 대한 논의가 진행 되었으며, 스타 작가의 초빙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지만, 이후의 디자인 서울에서 스타주의와 랜드마크주의는 그 스케일을 키워나갔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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