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12, 2010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2- 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청계천 (상)





디자인 서울의 어머니 '청계천' (상)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2에서는 청계천사업과 디자인서울의 연관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디자인 서울이 태어난 배경에는 청계천 복원이라는 국민 대 사기극이 있었다. 
청계천 사업에서 제대로 복원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철저한 파괴일 뿐이다. 청계천에서 흐르는 물은 수돗물이고 일제 강점기와 독재개발시대를 견뎌내고 콘크리드 밑에 꿋꿋하게 남아있던 문화재 상당부분이 회복 불가능하게 손상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을 두고 '서울 르네상스'니 하는 말들로 꾸며댔고, 심지어 이 사업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중점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 것은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로 명맥이 이어진다. 

디자인 수도 서울 인가 경관 토목공사 수도 인가?

2010년 현재 녹조 관리비용 증가물고기 방류청계천 상인들의 가든파이브 이전 실패등 여러가지로 서울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청계천 개발은 첫 한두 해 정도는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청계천 개발을 주도하였던 이명박 전 시장은 이 사업을 자신의 시장임기중 최고의 업적으로 내세우며대통령에 당선 되었다청계천 개발은 역사생태계’ 복원이라는 슬로건을 내 세웠는데그것은 겉으로만 보아서는 독재개발 시대의 무조건적 성장을 강조했던 토목공사와는 차별성이 있는 소프트 개발’ 사업처럼 보였다.
 차기 당선된 서울시장은 청계천 사업과 유사한 소프트한 개발 사업을 여러 개 기획하며급기야 서울시 행정의 핵심으로 디자인을 내 걸고, 2010년 디자인 수도를 위해 2007년 부터 야심차게 준비해왔다그런데 그 디자인이라는 것의 의미가 현 시대의 디자인이 담고 있는 의미의 영역즉 비 가시적비 물리적이고 상호 소통적인 영역보다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60-70년대식의 산업제품디자인 그리고 도시경관 디자인의 의미에 한정 되어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아래는 디자인서울 추진단이 내놓은 사업 방향이다.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살린 건강한 생태도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에 맥이 닿아 있는 품격 있는 문화도시, 세계 첨단의 IT인프라를 활용한 역동적인 첨단도시, 수준높은 교육을 받은 천만 시민에 의한 지식기반의 세계도시’ 가 ‘디자인 서울’의 비전이다. 서울시는 SOFT SEOUL 이라는 디자인 서울의 비전아래, 자연성에 기초하고 문화를 기반으로 서울의 도시경관을 변화시키는 계획으로 디자인서울을 추진하고있다.’

기본 목표에서도 명확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 사업의 목표는 결국  서울의 도시경관을 바꾸는 것이다디자인 사업단의 주요 핵심 사업이 한강 르네상스동대문 디자인 파크 건설등 공원 조성이나 문화의 거리조성이라는 점은 이 기본 방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디자인 사업의 슬로건은 소프트 서울(Soft Seoul)’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하드 서울(Hard Seoul)’인 것이다. 이것은 청계천 개발의 홍보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청계천 사업의 생태와 문화재를 복원하겠다고 홍보하였고디자인 서울은 생태 대신에 문화라는 좋은 내용을 삽입했다두 사업의 실체는 60-70년대 독재시대와 별 다를바 없는 토목 개발사업이지만  ‘문화생태복원등의 좋은 이름을 덧씌워 한 눈에 토목개발이라는 것을 알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디자인 서울의 가장 중점적 사업은 동대문 디자인 파크 플라자건립으로써 2007년 디자인 수도 사업 발표시 2010년 가을에 열리는 디자인 올림픽행사에 맞추어 개장 하기로 했다지명 설계를 거쳐 세계적인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을 선정하였다.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얼마 남지 않은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우리나라 아마추어 야구의 산 증인이자 아마추어 야구단이 유일하게 연습하고 경기할 수 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지키려는 사람들동대문 야구장의 고교야구 추억에 아쉬워 하는 사람들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30년 넘게 장사를 해온 노점상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풍물시장 상인들의 경우 청계천 개발로 수십년 된 상권을 며칠 만에 잃어 버리고 풍물시장으로 강제이주 된지 겨우 4년도 채 안되는 상황이었다상인들은 풍물시장을 노점상 난민수용소’ 라고 불렀다풍물시장의 시설은 열악했고여기 저기 흩어져 다양한 물건들을 팔 던 사람들이 한 데 억지로 모여있는 것은 흥미로움 만들지 못했고 따라서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다그나마 4년의 세월이 지나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쫓겨 새로 시작해야하는 상황에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한 상인은 우리는 이리차면 이리가고 저리차면 저리가는 돌맹이가 아니다.” 라고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결국 상인들은 시내와 떨어진 성동기계공고 너머로 다시 강제 이전하게 된다.
 









(폐허가 된 풍물시장 2008년)


청계천 개발의 악몽
청계천 개발 때의 풍경이 4년 만에 그대로 동대문 운동장에 반복되고 있었다청계천 복원 사업단을 설립하고 문화재 복원’, ‘생태복원을 위해 청계천 복원을 준비하고 발표한지 6개월 만인 2003 8월에 삼일 고가 도로를 기습 철거했다



아직 노점상주변상가의 보상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고 600년 동안 만들어진 청계천을 단 2년만에 복원한다는 계획은 누가봐도 무리한 계획이었다. 강제 철거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청계천 위에서 장사를 하던 많은 소상인들과 노점상들에 대한 뾰족한 대책 마련이 없이 공사가 강행되는 점진정한 하천 복원이 아니라 자양정수장의 정수된 수돗물과 근처 지하철의 지하수를 모터로 끌어 들이는 점개천의 모래가 자정작용하고 지하수의 유입이 자유로운 원래의 개천 복원이 아닌  방수코트로 바닥을 바르고 석재를 쌓은 거대 어항을 만드는 것에 대해 큰 반발이 있었지만 서울시는 공사를 강행하고 바닥을 파헤쳤다.
그런데 공사를 진행한지 석 달 후에 다른 큰 문제가 발생했다예상보다 너무 많은 문화재가 발견 된 것이다. 

(청계천의 단면- mbc 화면 캡쳐 )



(2003년 발굴된 양안석축)
(2003년 발견된 수표교터)

만약 발견된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한다면시장 임기내에 사업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청계천 사업단의 결정은 단호하고 신속했다예정대로 조경 사업을 진행완공한 후에 문화재를 그 위에 끼워 넣기로 한 것이었다문화재 복원이라는 목적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했다조경 설계와 맞지 않는 다는 이유등으로 광통교는 원래 자리에서 155m 가 옮겨졌고  밑기둥이 15cm 정도 잘려나갔으며적어도 250년된 양안 석축은 공장에서 갓 나온 새 돌에 맞추어져 잘라졌다. 2003년 발견된 100m 가량의 석축의 약 48m가 행방이 묘연하였고오간수문은 중랑구 하수 종말 처리장에 방치되었다지금 오간수문터에는 모양만 흉내낸 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청계천 복원의 핵심이었던 수표교 이전은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어버려 아직도 장충단공원에 자리하고있다

청계천 사업에서 제대로 복원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이것은 되려 철저한 파괴였다


3편에서 계속-
디자인 서울에 침을 뱉어라 3편  '청계천의 오늘'에서 청계천에서 벌어진 참극을 좀 더 샅샅이 살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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